피카소도 처음부터 그렇게 그리지 않았습니다.
다른 사람들처럼 사물을 눈에 보이는대로 충실히 묘사했어요.
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겁니다.
눈에 보이는 게 다 일까?
피카소는
자신의 진심으로
그것의 진리(본질)을 보고, 그리기 원했습니다.
그 목적을 위해
그는 우선,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부터 버렸어요.
그렇게 탄생한 그의 추상은
그 과정에서 얻은 그만의 해답이었습니다.
얼굴을 찍으며 그 피카소를 생각합니다.
보이는 그/그녀가,
진짜 그/그녀이고,
그/그녀의 다 일까?
그러다 엉뚱하게 갑자기
스케치북이 생각납니다.
스케치북이 중요한걸까?
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이 중요한걸까?
스케치북(보이는 나)을 잘 찍는 게 중요할까?
스케치북에 그린 그림(보이지 않는 나)을 잘 담는 게
중요할까?
예쁜 정답은
좋은 그림이 그려진 스케치북까지 잘 찍는 것이겠지만
그럼에도 더 중요한 것은 제게, 그림입니다.
그래서 저에게 얼굴을 찍는다는 것은
얼굴의 윤곽선(스케치북)만이 아닌
얼굴 위에 그려진 ‘당신’을 찍는 거예요.
얼굴 위에 당신을 그린다는 게 뭐냐구요?
저에게는 말하는 얼굴.
당신이 당신을 솔직하고, 구체적으로 세상에 말할 때
당신은 그 말로
당신의 얼굴 위에
당신을
그린답니다.
전,
얼굴 찍는 사진가로 그것을 실감했고,
그렇게 말하며 그린 당신이라는 그림을, 표정이란 이름으로 담아 왔거든요.
한 번 해 보세요.
배우 윤원종이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로, 얼굴 위에
‘윤원종’을 편하게, 툭! 툭! 그린 것처럼
당신도 얼굴이라는 스케치북 위에 “당신”을 그려 볼 수 있다고요.
#세이큐스튜디오 에서.